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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case/Literature

남쪽으로 튀어 / 오쿠다 히데오 / 양윤옥 번역 / 은행나무

by Neuls 2022.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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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겪을 수 있는 성장기, 하지만 그 속에서 대비되는 어떤 상황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한 소년의 성장기로 정리해도 될 만큼 아기자기한 사건과 고민, 그리고 상황들이 벌어진다. 이런 과정에서 주인공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수준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고 항상 문제를 일으켜 불안불안한 아버지가 있지만 항상 배려있고 따뜻함을 전해주는 어머니가 있기에 단란한 가족. 오랬동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나름 재밌는 학교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들. 그래서 그냥 평범한 이야기로 끌고가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기까지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는 달리 책장을 넘기면서 생각보다 큰 사건이 벌어지고, 한 소년이 겪어야 할, 아니 느껴야 할 것들이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에야 알게 되었다.

 

어찌보면 한 소년기 겪는 성장통이라고 볼 수 있는 사건들이기도 하다. 잘 사는 집 아이의 생일파티에서 듣게 되는 중학교 입학과 관련된 이야기, 문제아로 유명한 중학교 선배로 인해 점점 두려워지는 학교생활과 친구들과의 우정에 균열이 생기는 사건, 그리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부자 외갓집에 대한 동경까지. 우리가 자라면서, 아니 살면서 이미 쉽게 접하게 되는 사건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껏 이러한 경험과 과정을 통해 사회를 알아가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체득하게 된다. 때론 용기를 내어 저항해보기도 하고, 때론 굴복하여 살아가기도 한다. 어찌보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 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책에서도 그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불량 선배에게 돈을 바치기 위해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아이들. 이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굴욕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친구. 그리고 짧은 가출. 부유한 외갓집에서 느끼는 무언의 압박감 또는 위화감.

 

그렇다고 이러한 경험들을 에피소드로 나열만 했다면 그리 재밌는 소설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이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살찍 비틀어 보이면서 작가의 의도를 조금씩 내보이기 시작한다.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외갓집에 처음 방문한 부분었다. 갑자기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은 후 보답의 마음으로 텀블링을 시도하다 비싼 카펫 위에 구토하는 장면이다. 왜 지로는 자신의 외가에 먹은 음식에 대한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 순간 그 비싸게 보이는 카펫에 자신이 먹은 귀한 음식들을 토해내면서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나마 약간 마음이 풀렸다. 뭔가 보답을 한 듯한 심정이었다. 다음 순간, 구토가 치밀었다. 아앗, 안 돼, 하고 생각할 틈도 없이 지로는 위 속의 것을 토해내고 있었다. 카펫에 토사물이 튀었다.”

 

이러한 주인공 지로의 경험은 점점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와 겹쳐지기 시작한다. 한 때 과격 좌파 운동의 핵심 맴버였던 이치로는 운동을 그만두고 나서도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산다. 국민의 의무인 국민연금을 내라는 공무원에게 국가는 해로운 것이며 자유롭게 사는 것이 인간의 권리라는 주장을 하거나, 학교의 부조리를 파헤치기 위해 싸움을 일으키기도 한다. 젊었던 시절에 고민하던 정의의 의미를 쉽게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사는 아버지를 지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제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고 맘을 졸인다. 하지만 이런 아버지의 성향은 지로에게도 조금씩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무서웠던 불량 선배와 맞대결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시작점이 된다. 뒷감당이 두려워 가출을 하기에 이르지만... 그럼에도 지로는 아직 아버지라는 사람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느끼기에는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 일 뿐이며 어려운 말들뿐이다.

 

 

“혁명은 운동으로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아버지가 부르짖었다. 점점 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주아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모두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

 

이런 삶을 살았던, 아니 살아가고 있는 우에하라 이치로의 가장 큰 미덕은 자신의 신념을 아이들에게까지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머니 역시 동일하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며 그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때 그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적 특성상 또는 자본주의의 구조상 부모의 삶은 자녀들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소득, 재산, 교육, 사회적 위치 등 개인의 자질과는 상관없이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거의 잣대와 기준으로 미래를 성급히 재단해 버리기도 한다. 새롭게 돋아날 수 있는 미래의 싹을 미리 잘라버리는 것이다.

 

쉽게 읽은 듯 하지만 내용을 정리하고 이어 맞추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면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생각할 거리들을 잘 끼워 맞추어 놓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생각할 한 부분이라면 좌파든 우파든 가능성 또는 창조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설 수 있는 자리는 많지 않다라는 것이다.

 

 

 

“요즘은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잊혀져버렸지요. 하지만 내가 막 사회에 나왔을 무렵만 해도 한 세대 위의 사람들은 모두 학생운동의 냄새를 짙게 풍겼어요. 당시는 그들을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보니 ‘그건 오류였다’라는 점이 잔뜩 나오더군요. 만일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순수하게 살아갔다면 우에하라 이치로 같은 인물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2005년 6월 야후 저팬, 문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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