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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case/Literature

앵무새 죽이기 / 하퍼 리 / 열린책들

by Neuls 2022.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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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적, 지방 소도시에서 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리 크지 않은 면사무소가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낮은 능선의 산들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 푸릇푸릇한 벼들이 흔들리며 자라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친구들과 나는 그 동네를 작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놀 수 있는 거리가 널려있었고 하루하루 쏘다니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지금 대 도시에선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만, 아이들은 하루종일 놀다 해가 뉘역 뉘역 저물기 시작하면 먼지투성이의 옷을 털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놀다보면 당연히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동네의 상황을 잘 아는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아직 경험이 미천하고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누군가 다치거나 위험한 일들도 벌어진다. 잠깐 긁히는 정도의 사건이라면 괜찮다. 하지만 크게 상처를 입게 되어 꿰매야 하는 상황이거나 늦은 시간까지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근처를 지나가는 어른이 나선다. 다친 아이가 어디에 사는 누군지 뻔히 알기에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근처 병원이나 보건소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바로 부모에게 연락을 한다. 사슴 벌레를 잡겠다고 늦은 시간까지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아이들이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아이들을 찾아 나선다. 마을 주민들끼리의 대소사가 있으면 서로 돕는다. 초 겨울이 되면 그 많은 김치를 함께 담그기도 하고, 가끔 키우던 돼지나 소를 잡으면 마을 잔치가 벌여졌다. 그러니 각자 집안의 상황을 내밀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알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숟가락, 젓가락 개수를 안다고 했으니 말이다.

 

 

겉으로 보기엔 참으로 평온하고 고즈넉한 풍경 좋은 마을처럼 보인다. 사뭇 낭만적인 풍경의 이야기로 추억을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평온하게 보이는 마을에도 아이들이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엊그제까지 같은 반으로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인사도 없이 전학을 간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친해서 닭살스러운 인사를 하진 않지만 나름 어른스럽게 악수하며 부질없는 미래를 기약하기도 하였다. 이런 인사도 없이 한 친구가 사라지는 것이다. 때론 한 집안과 다른 집안이 원인모를 일로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끼린 불편하지 않았지만 우연한 어른과의 인사에서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낄 때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오래가는 경우도 있지만 한 두 달이 지나면 다시 평온함이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을주민 대다수가 기피하는, 또는 애써 존재를 무시하는 가족이 있었다. 분명 마을의 주민이었다. 꽤 오랫동안 마을에서 한 가정을 꾸려왔다. 아이도 있어 가끔 같이 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놀다가도 마을 주민이 그 아이의 아비나 어미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고 움츠러든다. 머리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가까이 해선 안 된다는 무언의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보면 아이들 사이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점점 그 아이와 노는 것이 줄어들게 되고 더 이상 관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때론 더 나아가 아이들끼리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은근한 따돌림이 습관화되어 직접적인 괴롭힘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그 당시엔 왜 그랬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어렴풋이 또는 직감적으로 위험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마을을 떠나 더 큰 사회에 나가게 되는 나이가 되면서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한다. 어렴풋하던 것이 구체화되기 시작하고 무엇인가를 알기 시작하게 된다. 항상 드러나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것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그리고 낭만적인 추억의 한 자리에 불편한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된다. 가끔, 아주 가끔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며 스스로 왜 그렇게 했는지 생각해보지만 금방 머리를 가로저으며 떨쳐낸다. 결론을 내리지도 못하고 말이다. 그러다 이런 일들에 대한 설명 또는 방향을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있었다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곤 한다. 만약 누군가 그런 것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줄 수 있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기회를 얻는 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부모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나에게 다정다감한 부모라 하더라도 그 때의 분위기와 흐름을 거부하기 쉽지 않다. 가장 쉬운 방법이라면 당시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넘어가는 것이다. 더구나 외부의 자극이나 변화에 둔감한 작은 소도시에선 더욱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만약 그 분위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마을 주민 전체에게 의구심을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 앵무새 죽이기을 읽으면서 화자인 스카웃 핀치를 부러워했던 점이 이 부분이다. 자녀를 바라보는 부드러운 눈빛과 말투, 때론 엄정하면서 결단 있는 행동을 하는 부모의 존재를 말이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이어져 온 공동체의 잘못된 인식과 행동에 대해 자신만의 방법과 신념으로 대응하는 용기는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다. 더구나 대공항의 시대의 혼란스러움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만연해 있던 그 시절이라면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소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오히려 법정이라는 공개적인 자리였기에 가능했을 일이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마을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잣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스카웃에게 무언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행동일 때도 있고,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이야기일 경우도 있다. 더구나 여자로서 숙녀라는 또 다른 사회적 편견 앞에 놓여져 있는 스카웃에게 그런 틀을 강요하기 않는다. 오히려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누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럼에도 이런 자신의 노력이 실패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노력한다.

 

 

저는 우리 법원과 사법 제도를 확신하는 그런 이상주의자는 아닙니다. 저에게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살아서 꿈틀거리는 현실이지요. 배심원 여러분, 법정은 제 앞 배심원석에서 앉아 계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건전해야만 거전할 수 있습니다. 법정은 오직 배심원단이 건전한 만큼 건전하고 배심원단은 그 구성원이 건전한 만큼 건전합니다. 배심원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으신 증거를 감정의 동요 없이 검토하여 판단을 내려 이 피고를 그의 가족에게 돌려보내주시리라 확신합니다. 배심원 여러분 맡은 바 임무를 다해 주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비는 바입니다. P 380.

 

 

우리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공동체의 규율이라는 이름으로 비합리적인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강요받는다. 공동체의 전통과 규율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하나의 체계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준 부분도 있다. 하지만 사회 또는 공동체는 어느 순간 변화의 시점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된다. 외적인 기술과 경제의 발전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때론 인권의 성장과 인간을 바라보는 인식의 성장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당연히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공동체의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새로운 공동체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혼자 그 짐을 짊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생각보다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공동체와 변화의 사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용기를 내었던 핀치 변호사의 존재는 남다르게 느껴진다. 또한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지혜롭게 이어온 그의 고민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더구나 그 변화의 기간이 꽤 길다는 것을 잘 알기에 어떻게 하면 그 과정을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자신의 생각을 지키고 버텨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그렇다곤 생각하지 않는다만. 진 루이즈 양, 너희 아빠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너는 아직 잘 몰라. 그걸 제대로 깨달으려면 앞으로 몇 년은 더 있어야 할 거야. 넌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니까. 세상은커녕 아직 이 읍내도 제대로 알지 못하지. 어서 법원 안으로 들어가거라“ P 373

 

 

PS. 처음 이 소설을 읽었던 것이 고등학교 때였다. 그때에는 그냥 읽어 볼만한 소설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후 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읽었을 때에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어렸을 때 이해하던 것과 비교해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고민하다 이번 세 번째 읽음으로 생각을 정리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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