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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case/Literature

남한산성 / 김훈 / 학고재

by Neuls 2022.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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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아니 서늘하다고 표현할 뿐 칼바람이 분다. 습기는 땅에 떨어져 발에 밟히고, 피부의 물기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위로 스치는 겨울의 바람은 시리다 못해 칼이 지나간 듯 생채기를 남긴다. 그 위, 그토록 칼바람이 스치는 성루 위에 두 사람이 올라서 저 멀리 진을 치고 있는 후금의 병사들을 바라보고 있다. 두 사람의 네 개의 눈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들의 머릿속은 다른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살기 위해선 우리가 죽어야 하는 것이오. 그래야 근본이 살고 자유로워지는 것이외다. 여기서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있는지 모르겠소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지금의 생각을 죽여야 다음을 살 수 있다는 것뿐이오. 그것이 근본을 살리는 것이고, 그것이 백성을 살리는 것이외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소리 없이 논하고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은 깍듯하고 예의바르다. 핡퀴고 생채기를 내야만하는 논리의 자리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존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더 무엇이 지금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쉽지 않다. 서로가 가진 지식과 경험, 그리고 더 나아가 이상의 내용을 어떻게 감내할 것인지 표현하지 않아도 그 묵직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바로 그 아래. 튼튼한 성벽의 아래. 하지만 그 아무리 튼튼하고 치밀하게 만들었다 하더라도 작은 틈이 있기 마련이다. 이 틈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숨을 쉬기도 하였고, 불안이 오고가기도 하였다. 그 작은 구멍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백성이라 불리는 사람들.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이어오던 그들에게 후금의 침략은 지금 당장을 살기 위한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 구멍을 통해 이제 위험한 숨을 쉬어보려 하고 있었다. 그런 백성들 사이로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주어진 생과 가족의 입에 풀칠을 위해 오랫동안 대장장이 일을 해온 사내다. 나름의 경험들을 이어 붙일 줄 알았던 그는 다른 이들보다 조금 빠르게 움직일 줄 알았다. 다음을 준비하고 다음을 실천하는 그런 사람. 그가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자신의 것을 잘 알고 움직일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지체 높은 이의 요청으로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이 구멍을 통해 지원군을 요청하러 나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등에 매어져 있는 왜소한 바랑에는 가죽신 세 켤레와 버선 한 죽, 호미 한 개, 칼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몇 날이 걸릴지도 모를 일에 그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며 그 구멍을 나서려 하고 있었다.

 

 

김훈이라는 사람이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풍전등화와 같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국가. 그 속에서 펼쳐지는 정치적 수사와 관점들이 떨어뜨리는 결과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백성의 운명. 단순히 한 왕조의 끝을 지키고 하는 것을 넘어서, 나라의 근본, 그리고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역할, 더 나아가 책임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정치라는 것이 결국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아닌지... 그런 밀접함이 어느 순간 멀어지거나 의미 없는 듯 느껴지기 시작할 때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봄에는 조정이 나가는 것이옵니까? 조정이 비켜줘야 소인들도 살 것이온데...
김상헌은 대답하지 못했다.

P319

 

 

 

 

PS. 오래전에 구매했지만 얼마 전에 읽어 냈다. 몇 년 전 영화를 먼저 봤다. 그 때의 강렬함으로 이 책을 읽는 걸 오히려 뒤로 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읽으려 책을 펼치니 영화의 영상들이 다시 떠올랐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영화에선 글의 내용을 압축해 만들었기에 단순하게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영화 자체도 볼만했다. 하지만 그 바닥에 대한 이해와 관점. 항상 그렇듯 소설은 그 내면을 더욱 세밀하게 볼 수 있게 만든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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