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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제주 여행기/Section 00 Before

Prologue

by Neuls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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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여행을 부르다.

대한민국 첫 봄의 생산지 제주도를 찾았다. 꾸덕꾸덕 얼었던 대지는 어느새 봄기운을 입어 폭신폭신 녹아있고, 단단한 껍질을 뚫고나온 새순은 아이 손바닥 같은 잎사귀를 뻗어 하늘 향해 손뼉치고 있었다. 일생을 만나도 좀처럼 변한모습을 찾기 어려운 도시는 고작해야 아침 아니면 저녁이 배달될 뿐이었지만, 도시 바깥을 차지한 들녘은 선명한 계절이 때를 거르지 않고 순환되는 것이었다. 봄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구원자였다. 차가운 땅 속에 숨었던 씨앗을 깨우고, 굳었던 혈관에는 온기를 불어 새로운 부활을 선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매년 그랬지만 봄은 언제나 여행을 권유하고는 했다. 가물어 지친 마음에 찬물을 뿌리며 정신 차려 이친구야, 초록 벌판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야 할 시간이 되었어.’하며 정신이 번쩍 들도록 엉덩이를 걷어차고는 했다. 봄인데도 떠날 줄 모르는 것은 비겁하거니와 초록의 대지를 마주하고도 뛰어들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가여운 삶이냐고 봄은 연방 떠들어 댔다. 20대가 가기 전에, 서른이 오기 전에, 눈부신 삼십대를 기념하며, 죽기보다 두려운 사십대를 앞두고, 너는 도대체 몇 번이나 여행을 계획하고 포기하기를 반복했느냐며 악담도 서슴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겁이 늘어간다는 사실을 지난날에는 왜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뜬금없이 산발적인 비가 내렸다. 후둑... 후두둑... 몇 번을 몰아치던 하늘은 이내 말문을 닫아버렸다.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니 촉촉한 대지를 뚫고 어린잎을 솟아낸 가지마다 철거를 앞둔 봄이 울컥 고여 있다. 나는 아직 머뭇거리고 있는데, 또다시 봄은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서두르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더 늦기 전에 길을 나서야만 할 것 같다. 떠나온 그곳에서 초록빛 잉크를 찍어 오늘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공정여행자 들의 제주도 러쉬

이 풍경 얼마죠? , 그렇게 비싸요? 그럼 저 풍경은요? 우와, 너무 비싸네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풍경에도 값은 있다.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매우 고가의 풍경들이 우리 주위엔 많이 있다. 우리가 사려 깊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 모든 여행자는 이미 그런 풍경들에 값을 지불하며 여행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매번 느끼는 생각이지만 여행지를 찾을 때마다 입장료를 내는 일엔 영 어색할 뿐이다. 자연이 스스로 걷어 들이는 것도 아닌데, 풍경 값을 인간이 받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늘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관리와 유지를 목적으로 한다지만 인상 깊었던 여행지를 몇 년 뒤 다시 찾았을 때 전혀 관리 받지 못하고 있거나 어울리지 않은 생소한 건물들이 들어선 모습을 볼 때면 그 입장료라는 것은 자연을 위한 보호비가 아니라 풍경을 미끼로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탐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풍경은 늙고 병들어 가는데도 입장료와 여행 경비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이 불편한 진실에서 여행자들은 누구에게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는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올레 길을 비롯한 도보여행에서부터 자전거, 스쿠터 등 몸은 고되지만 마음에 쌓이는 감동은 결코 가난하지 않은 여행지로 탈바꿈 되고 있다. 2012년을 기점으로 해안과 내륙의 주요 지점들을 도보와 대중교통으로 연결하는 올레 벨트가 완성되었고,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와 수많은 문화지대들이 제주 곳곳에 터를 잡고 여행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단 한 번의 여행만으로도 몇 배의 가치와 의미를 얻게 하는 제주도에서 착하고 공정한 여행을 자신에게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고맙고, 또 고마운 사람들

책을 준비하며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일이 열거해 보려다가 이내 포기하고 만다. 제주에서 만나고, 오직 제주에서만 함께했던 은혜로운 사람들......, 나와 동행해 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었던 그들 모두에게 땀과 바다와 바람과 검은 돌로 가득 채운 이 책을 바치고자 한다. 그리고 더불어 자신만의 색채와 철학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길을 떠나는 고집쟁이 여행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13 1월 박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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