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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제주 여행기/Section 03 만나다

040. 화가 송승호를 만나다

by Neuls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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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송승호를 만나다

 

작은 관심으로부터 인연은 시작된다고 했던가, 그러니까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곳은 하루 여정을 끝내고 돌아온 숙소였다. 남제주에 속한 풍경들과 달콤한 연애에 빠져있던 나는 여행자의 천국으로 불리는 서귀포SEA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름 가까이 머물고 있는 터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벌어진 술자리에서 유독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는데, 야생마처럼 긴 머리칼을 늘어뜨린 그는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여행자 속에서도 특별한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매일처럼 반복되는 여흥이었지만 하루 이상 같은 숙소에 머무는 일이 적은 나그네들이기에 좀처럼 인연을 맺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연이은 관찰에 그도 눈치 채기 시작했을 즈음 나는 옆자리로 이동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짐작했던 대로 그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 역시 무명 사진쟁이라며 술잔을 건네자 그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묵향이 짙게 베인 그와의 대화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서로의 작품 속을 넘나들며 몇 순배 곡주가 오가던 끝에 우리는 결국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고, 여흥이 막바지에 이르러오자 나는 문득 조바심이 일었다. 살면서 경험한 바로는 술자리의 우정이란 그 다음날이면 사라져버릴 만큼 유통기한이 짧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와 동행하기로 마음먹고 남아있는 일정을 물어보았다. 마음이 동하고 발길이 허락하는 곳이 자신의 목적지라고 그는 대답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내가 따라나서기를 청하자 그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화가와 떠나는 여행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음날 일정에 지장이 없을 만큼 취기가 오르자 모든 술자리는 끝이 났고 다음날 아침, 화가와 사진쟁이의 동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가 처음 발길을 넣은 곳은 한라산 중허리에 위치한 거린사슴이었다. 묵직한 능선들이 고적한 풍경을 이루는 거린사슴은 남제주 일대와 서귀포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위치하고 있었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떼를 쫓으며 반나절 가량 한라산 중턱을 휘젓던 우리는 중문으로 이동해 주린 배를 채운 후 다시 송악산을 오르기 위해 동회선 일주 버스에 몸을 실었다. 끓는 신음 소리를 내며 낡은 버스는 출발했고 제주 도민들로 가득 찬 버스 안에 이방인이라고는 우리 둘 밖에 없었다. “이제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여행하는 방법을 자꾸만 잊어가는 것 같아.” 지도를 펴고 다음 행선지를 살피던 그는 잠시 덜컹거리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낮게 읊조리듯 말했다. 게으른 몸 보다 지친 마음을 먼저 위로하는 여행이 그립다는 그를 보며 나 또한 창밖 아날로그 풍경에 시선을 던져보았다. 온화하고 소박한 일상들이 낡은 스크린을 통해 느린 걸음으로 수신되고 있었다. 흔들리는 차창에 몸을 기댄 채 잠시 선잠에 빠져든 사이 버스는 어느새 대정읍에 진입하고 있었다. 상모리 너른 들녘에 내려선 우리는 알뜨르비행장 방면으로 길을 잡았다. 일 년 내내 곡식들로 가득하다는 상모리 들녘엔 듣던 대로 빈 땅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푸르른 대지가 드넓게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대륙을 연상케 하는 이곳에도 일제 강점기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었다. 패망을 앞둔 일본이 최후 거점으로 제주도를 택하게 되면서 상모리 평야는 그들 공군력이 집결하는 전략적 요충지가 되고 만다. 수많은 제주도민이 강제로 끌려와 고된 노역에 시달려야했고, 해방 이후 6,25가 발발한 후엔 불순분자로 내몰려 210여명의 양민이 이곳 일원에서 국군에게 학살되기도 했다. 아픈 흔적들이 척연하게 스며있는 섯알오름에서 한 식경을 머문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겨 송악산으로 향했다. 제주의 수많은 비경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해안풍경을 소유한 이곳 송악산 일대는 웅장한 산방산을 거느리며 일대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온 신경이 압도된 상태에서 한동안 넋을 잃고 있던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려 송 화백을 찾았다. 어느새 스케치북을 펼쳐든 그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빠른 손놀림으로 작품에 몰입해 있었다. 풍경을 위주로 여행지를 선택하는 그의 방식은 관광을 목적으로 방향을 잡는 나와는 사뭇 다름 느낌으로 다가왔다. 내게 목적지를 연결하는 공간과 거리 따위는 그저 쓸모없이 소비되는 시간에 불과했지만 그가 이동하며 만나는 공간과 피사체들은 무엇 하나 허투루 버려지지 않고 모두 귀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무작정 길을 걷다가 마음이 끌리는 풍경을 만나면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거나, 그대로 주저앉아 하염없이 스케치에 몰두하는 그를 보면서 내가 진정으로 찾고자 하는 여행의 참다운 의미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촬영을 끝내고 서울로 복귀한 어느 날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화가 송승호의 개인전 초대장이었다. 나는 지체 없이 전시회가 열리는 인사동으로 달려갔다. 그가 머물렀던 공간들이 어떤 그림들로 되살아났을까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갤러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전시관 특유의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가지런히 벽에 걸린 그림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안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반가운 얼굴이 두 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화가 송승호였다. 함께 제주도를 걸을 때만 해도 같은 여행자 신분이었던 그는 보기에도 멋들어진 화가의 모습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좀 더 자세히 그림들을 살펴보았다. 농담(濃淡)이 뒤섞인 수천가닥의 선들이 힘차게 물결치며 제주의 숨은 비경을 생생하게 되살려놓고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잠시 제주도를 추억한 우리는 수일 내에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문득 지난번에 올라탔던 상모리행 버스를 떠올려 보았다. 비슷한 크기의 객차 안에는 그때와 비슷한 수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고 나는 여전히 여행자의 신분으로 이들 속에 섞여있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검은 터널을 미끄러지듯 유영해간 열차는 나와 반대편으로 도주하는 영상들을 빠르게 전송하고 있었다. 열차가 신도림역에 이르러 만삭의 몸을 해산하자 텅 비워진 객실 안으로 맹인 다섯 사람이 올라탔다. 서로를 의지하며 한곳에 자리 잡은 그들은 지팡이를 접어 겨드랑이에 끼고는 앞 사람 어깨를 짚거나, 서로의 팔을 걸고서 흔들리는 열차와 한 몸이 된 듯 이내 고요해 졌다. 나는 문득 송화백과 건너갔던 가파도 청보리 밭이 떠올랐다. 바다가 밀어올린 해풍을 맞으며 파란 머리를 쑥쑥 뻗어 올리던 보리밭이다. 그곳을 찾은 사람들도 좁은 청보리 길을 따라 한 줄로 서서 서로의 어깨를 기대던 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생각해 보거니와 그들도 이들처럼 다섯이 함께했었음을 목적지에 다 와서야 나는 겨우 기억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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