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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 Working/Idea

[공방 실패기] 002. 처음 목공이라는 이름을 경험하다.

by Neuls 2023.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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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공방에 방문했을 때의 풍경이다. 나중에는 더 많은 것이 채워졌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실패기라는 거창하면서도 부끄러운 단면을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의 구성에 있어 시기별 흐름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선 별도의 구성으로 정리해야 하기에 이런 저런 구상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그렇게 많이 생각하면 더 정리가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냥 떠오르는대로 쓰다보면 어느 정도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리고 경험의 시작을 이렇게 풀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런 시작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읽어주시길 바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목공이라고 하면 가구를 만드는 것에 한정지어 생각했다. 나 역시 목공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하면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목공의 분야와 넓이를 한정지어 생각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집을 짓는 것, 가구를 만드는 것, 악기를 만드는 것, 더 나아가 일상생활, 또는 필요한 무언가를 나무라는 소재로 만드는 것. 그것을 목공이라 부른다. 동일한 공구를 사용하고 형태는 다르지만 동일한 목적 또는 활용을 위해 작업하는 것. 그것이 목공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것이 목공이다. 다만 그 행위가 또는 직업의 차이를 두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럼 나의 목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직업으로 또는 작업으로서의 목공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두 번의 굵직한 경제적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 바로 IMF와 이후 이어진 카드대란이다. 내 나이 정도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은 일이라 특별하다 할 수는 없으리라. 다만 나의 인생에 있어 험난한 파도에 조금 더 크게 그리고 강하게 부딪쳐 왔을 뿐이다. 처음 닥쳐온 IMF는 그나마 군대라는 회피 장소가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당장 닥쳐 올 수 있는 경제적 위험을 피해갈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잠시의 시간유예였을 뿐이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카드대란이라는 사건이 정점으로 올라왔을 때 직격탄으로 인생의 험난함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그 직격탄은 결국 다니던 대학을 1학기만 남겨둔 채 그만두게 만들었고, 어디도 갈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기에 서울 인근 김포의 선배집에 홀로 의탁하게 된다. 그리고 선배의 집 별채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뒤 나를 깨우며 선배가 한마디 한다. “일어나, 일하러 가자”.

 

 

 

인테리어도 목공이다.

 

 

 

선배는 김포에서 작은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였다. 하지만 지방의 작은 교회이다 보니 헌금은커녕 교회를 운영할 수 있는 운영비도 부족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꽤 오랫동안, 대학을 다닐 때부터 일명 노가다를 하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내가 김포에 내려갔을 때에도 계속 그 일을 하고 있었고, 물론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다. 아무튼 그렇게 선배를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노가다를 하는 것이다 보니 당연히 공구를 쥐거나 목수일을 했던 것은 아니다. 벽돌을 나르거나 바닥에 바를 시멘트를 섞는 일을 했다. 또는 같이 일하던 나이 많은 다른 형님에게 화장실 타일 작업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하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일만 하다가 어느 날부터 선배가 공구를 주며 해보라고 시키기 시작했다. 벽에 가벽을 세우기 위해 목재를 고정하거나 사다리를 짜는 일, 또는 천장을 만들기 위해 구조물을 만드는 일 등. 때론 몰딩을 고정하는 작업을 하는 등 기초적인 내장목수(요즘은 인테리어 목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을 조금씩 배워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일들이 목공이라는 생각이나 의미 부여를 하진 않았다. 그저 하루의 일을, 돈을 벌기 위한 육체노동이었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침 일찍 일을 나갔다가 저녁 어둑해지기 시작하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일상이 이어졌다. 항상 트럭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좌석 보다 트럭 뒤편, 공구와 자재들이 실어져있는 공간에 앉아 덜컹거리는 흔들림과 김포 특유의 바람 냄새를 맡으며 돌아오는 것이 가장 큰 낙이었다. 그러다 일이 없을 때면 같이 선배의 집에 의탁하고 있는 형님과 함께 선배의 트럭을 빌려 고철과 고물을 수거하러 김포 여기저기를 쏘다니기도 했다. 물론 생각보다 수입이 쏠쏠했다. 이렇게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조금씩 모은 돈으로 나름 큰 도전인 노점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게 되었고 목공이라는 직업적인 작업을 경험해 보게 된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사회복지와 관련한 일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무런 이력, 더 나아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기에 취업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우연인지 아니면 운명인지, 지금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취업을 고졸이라는 학력에도 불구하고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인테리어와 목공이라는 단어는 이후 7년간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되어버린 듯 생각되었다.

 

 

생에 처음 갖는 직장, 첫 취업이었고 그동안 관심이 많았던 분야였기에 나름 열심히 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껏 생각하던 것을 실현하거나 적용하는 데 필요한 것이 많았지만 열심히 일하며 배우려 노력했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어느 정도 인정도 받았고 나름 꽤 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너무 열심히 일했던 것인지, 아니면 생각하던 이상이 너무 컸는지, 의도했던 것들이나 생각했던 것들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아직 혈기 왕성하고 해보고 싶은 것들도 많았기에 이런 실망들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요즘 말하는 번아웃같은 상황이 나타났다. 그리고 결국 7년 만에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당시에는 그냥 쉬고만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냥 한 길만 보고 내달리다보니 주변의 것들을 신경 쓰거나 고려하지 못한 것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당분간 쉬자는 생각, 머리를 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몇 달간 아무생각 없이 쉬기로 하였다. 그렇게 몇 달을 쉬고 있던 중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런 제안을 받았다. “같이 일하자, 나 좀 도와줘”. 고민을 많이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냥 쉬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맞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일만하며 살았던 경험 때문인지 몸이 근질거렸고, 몸을 움직이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기에 하나의 조건을 걸고 그가 제안한 일을 시작하기도 하였다. 조건은 단 하나. “난 시켜주는 일만 할 거야. 나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마라”. 정말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지만 친구는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조건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시작한 일이 가구를 만드는 공방의 일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8년의 시간이 흐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그 선택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바꾸게 되었다는 점을 시간이 많이 흘러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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