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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 Working/Idea

[공방 실패기] 003. 생각보다 많이 무모했던...

by Neuls 2023.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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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으로 제작했던 원목 블록.

 

 

처음으로 작은 가구를 만들고 주문한 곳에 방문하여 돈을 받고 설치했던 기억.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문을 받았던 것은 같이 일하던 친구였고, 나보고 직접 만들어 배송과 설치까지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리 어려운 가구는 아니었기에 2시간이면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소품 같은 가구였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제작을 하고 설치까지 끝낸 후, 비용을 정산하며 돈을 받았을 때의 기분이 생각난다. 무언가 설레이는 기분. 받은 사람도 만족하고 처음 이렇게 만들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느낌. 단지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느껴지는 만족감 같은 그런 것.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릿속에 떠오르진 않는다. 다만 이 경험을 시작으로 목공, 특히 가구를 만드는 것에 대한 자세와 생각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처음 공방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그전에 인테리어와 관련한 경험과 나무를 만져봤다는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실제 가구를 제작할 때 알아야 하는 것들을 새롭게 배워야 했다. 대단한 제작방식이거나 특별한 기계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드릴과 나사를 사용하여 가공된 목재를 결합하고 무언가 사용할 수 있는 가구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익히는 것. 그것이 처음 시작이었다. 친구 녀석이 주문을 받으면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숫자를 계산해 낸다. 가공해야 하는 목재를 선택하고 목공기계들이 설치되어 있는 기계실에 들어가 한참 목재를 가공하고 나온다. 그러고 난 후 나와 함께 일하던 형님 둘이서 실제 제작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그냥 적당이 하면 된다는 이야기에 몇 가지 원칙에 대해서만 듣고 조금씩 따라하기 시작했다. 목재를 결함하기 전 초벌 샌딩을 하고난 뒤 조립에 들어간다. 결합되어야 할 부분에 드릴로 작은 구멍을 가공하고 그 안에 나사를 결합한다. 그리고 그 나사못이 들어 간 자리에 같은 목재를 가공한 목심이라는 자재를 이용하여 막으면 전체적인 조립은 끝이 나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샌딩을 진행한다. 작업을 하면서 찍한 곳이나 흠집이 난 곳을 중심으로 샌딩을 한다. 또한 모서리 등은 날카롭기 때문에 반드시 적당히 샌딩을 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깔끔하게 사포작업을 끝낸 가구는 이제 마감제로 마감을 하면 가구로서 완성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지, 같은 상황에서 다른 공구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언지, 목재에 따라서 작업방식이 왜 달라져야 하는지 같은 그런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가구를 만들고 다양한 작업을 해나가면서 그냥 상황에 맞게 몸에 익히고 지금 당장 들어 온 주문을 쳐내는 것이 전부였다. 더구나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시키는 것만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편했고 그동안 해오던 방식을 그냥 그렇게 수행할 뿐이었다.

 

 

 

다양한 용도의 가구를 만들어야 했기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떠한 시간의 흐름을 설명할 때 가장 편하게 할 수 방법이 세 가지 단계로 설명하는 방법이다. 그 시간의 흐름을 명확히 구분하여 이야기 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그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런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그 첫 번째 기간이 위에서 이야기한 기간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목공이라는 작업을 조금씩 배워가며 익혀가는 과정이었다. 수없이 많은 반복작업이 이어졌고 이러한 경험이 전체적인 목공의 과정을 몸으로 그려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할 수 있다. 물론 공방 운영 전체를 살펴보면 가구를 만드는 것만 있지 않았다. 당시 공방에서 일하는 인원은 총 5명이었다. 소품 및 교육팀과 가구제작팀, 이렇게 두 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소품 및 교육팀은 말 그대로 소품과 교육을 전담하는 팀이었다. 공방 초기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위한 가구주문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기에 팀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목공에 대한 교육 또는 수요가 종종 있었다. 공방 자체적인 교육까지는 아니었지만 학교나 교육시설을 통해 알음알음 들어오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팀의 구분이 명확히하여 별도로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때론 가구제작의 주문이 많을 때면 함께 작업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는 인원이 많은 교육에 대한 의뢰가 들어오면 투입될 수 있는 인원이 함께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다. 교육이라는 것이 단순히 몸만 가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리 교육을 위한 목재를 미리 가공해야 하는 것도 있었고 필요한 장비와 공구들을 옮기는 것 역시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활동이 공방을 운영하기 위해 함께한 활동이었다. 힘들고 어려운 것들 투성이었지만 나름 잘해보고자 서로 노력했던 것이다. 공방의 운영을 위해 나름 구성원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다양한 소품과 목공체험 관련 수업을 확대하기 위한 방법을 정리해보기도 했다. 지역에서 공방을 알릴 수 있는 행사가 있으면 가능하면 참여하여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아파트 홍보, 지역 신문에 알림 홍보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시간이 오래 가진 못했다. 원목소품이라는 것의 정체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이러한 관심 역시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래에 들어서는 다양하고 디자인된 원목 소품들이 많지만, 당시에는 그런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원목으로 만들어진 가구에 대한 수요 역시 많지 않았다. 어느 정도 관심과 수요가 있었지만 꽤 높은 가격대로 인해 망설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나마 조금씩 목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과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목공에 대한 조명이 이어지면서 점차 나아지고 있는 상황정도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5명이라는 인원의 급여를 챙겨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서울시에서 지원해주는 자금이 없었더라면 운영마저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할 수 있는 일들 해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오래 가면 모두의 동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당면해있는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5명의 인원 중 3명이 공방을 그만두게 되었고 나보다 몇 살 위인 형님과 나, 이렇게 둘만 남게 되었다. 누군가 공방의 운영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공방의 첫 번째 시기가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처음 입주 아파트 배송이 기억난다.  앨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아 12층까지 두 명이서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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