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1 남한산성 / 김훈 / 학고재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아니 서늘하다고 표현할 뿐 칼바람이 분다. 습기는 땅에 떨어져 발에 밟히고, 피부의 물기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위로 스치는 겨울의 바람은 시리다 못해 칼이 지나간 듯 생채기를 남긴다. 그 위, 그토록 칼바람이 스치는 성루 위에 두 사람이 올라서 저 멀리 진을 치고 있는 후금의 병사들을 바라보고 있다. 두 사람의 네 개의 눈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들의 머릿속은 다른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살기 위해선 우리가 죽어야 하는 것이오. 그래야 근본이 살고 자유로워지는 것이외다. 여기서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있는지 모르겠소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지금의 생각을 죽여야 다음을 살 수 있다는 것뿐이오. 그것이 근본을 살리는 것이고, 그것이 백성을 살리는 것이외다. 서로 다른 .. 2022. 10. 2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