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온도가 살짝 오르고 있는 느낌이 전해진다. 그렇다고 푸근한 느낌은 아니다. 차가운 기운, 그러니까 코끝의 온도가 조금씩 오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온도. 그와 함께 저 멀리 청명하게 보이던 산등성이의 굴곡이 보이지 않게 만드는 미세먼지들이 부옇게 쌓여가고 있다. 이는 곧 봄이 오고 있다는 뜻이다. 시끄럽게 만들었던 사건과 함께 찾아왔던 겨울이 이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역사의 한 장이 자락거리며 넘어가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어쩌면 특별하게 기억될 그런 봄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겨울과 함께 시작했던 강화에서의 일정도 한 단락을 넘기고 있다. 매섭게 불던 추위로 손을 오그리며 작업했던 일들. 하나의 현장이 끝나고 곧바로 이어진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지만 이 현장 역시 하나의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 조금의 위로를 받던 풍경. 일출과 눈 오는 풍경. 겨울이라고 하여 모든 것이 차갑고 가라 앉아있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 속에서 찾는 떨림을 느끼게 했던 그러한 풍경. 그러한 풍경에 한 자리를 차지했던 하나가 있으니 바로 철새들이었다.
조금 검색해보니 쇠기러기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직 해가 뜨기 전 현장으로 이동을 하다보면 저 멀리 희미한 여명 사이로 기러기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먹이를 찾으러 움직이는 것인지 어디론가 바쁘게 날개짓을 하며 날아가는 풍경이 꽤 볼만했다. 그러다 낮은 동산 너머로 겨울 해가 오르기 시작하면 그 풍경의 영상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장관으로 기억에 남는다. 점심이 되어 이동을 할 때면 주변의 논밭을 뒤뚱거리며 처음 듣는 소리를 내며 땅바닥을 훑는 기러기들을 볼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을 찾아 먹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다. 추수를 마친 낟알들을 찾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저 멀리 하늘 높게 유영하는 새매(정확히는 모른다. 생각보다 큰 매의 일종으로 생각된다.)가 낮게 날기 시작하면 일제히 날개짓을 하며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쁜 현장의 움직임 속에서도 잠깐 바라보는 이런 풍경이 상당히 기억에 남았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느껴진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찾아오고 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출근을 했다면, 이젠 출근하면서 어느 정도 솟아 오른 태양의 눈부심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기러기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낮이 길어지면서 함께 그들도 떠날 준비를 하듯 움직이는 시간도 함께 빨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점심시간이 될 때면 길게 늘어선 기러기 떼를 볼 수 있었다. 멋진 비행기의 삼각형 편대를 유지하듯 날아가거나 상당히 길게 늘어선 일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제 떠난다는 것을 보여주듯 상당히 높게 날고 있으며, 집중이라도 하듯 맨 앞의 기러기만 몇 마디의 소리를 낸다.
아쉬웠다. 겨우내 볼 수 있었던 기러기들이 떠나는 것이 아쉬웠던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또 시간이 지나서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랬던 것인지 저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들을 보며 조용히 한 마디 건넸다.
‘너희들의 날개짓에 건승을 빈다. 내년에도 또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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