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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case164

[문장] 008.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편지. 교황 '프란치스코'가 무신론자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됐다고 가디언이 11일 전했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 리퍼블리카에 보낸 2500자 분량의기고문에서 교황은 “신의 자비는 한계가 없다”며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살면 된다”고 밝혔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무신론자로 밝힌 라 리퍼블리카의 공동 설립자 유제니오 스칼파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스칼파리가 이를 신문에 공개한 것이다. 교황의 기고문은 라 리퍼블리카의 12일자 1면에 실렸고 기고문 끝에는 간략하게 ‘프란치스코’라는 필자명이 적혀있었다. 스칼파리는 지난 여름 교황에게 “신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신이 용서할 지를 물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번 편지에서 “진심어리고 뉘우치는 마음을 갖고 접근한다면 신의 자비는 한계가 없.. 2019. 8. 15.
[문장] 007. 가장 끔찍한 것. 가장 끔찍한 것은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불길한 예감에 불과했던 것에 이제는 우리가 익숙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었다. 구렁텅이 안에는 또 다른 구덩이가 파였다. 아, 안돼, 더 이상은 안 돼, 모든 일엔 한계가 있는 법니야,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끔찍해! 하고 생각했지만 다음날이면 그 끔찍함이 더 이상 놀라울 것도 없는 일로 바뀌어 있었다. 그보다 더 나쁜건, 휘청거리는 양심이 전력을 가해 자신을 합리화 할 구실을 찾아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가맴논의 딸 / 이스마일 카다레 2019. 8. 9.
뱀의 욕망 이 세상에는 다리를 원하지만 허물벗기에 지쳐버렸거나 게으름뱅이거나 벗는 방법을 모르는 뱀이 수없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도 있다는 말씀. 그리고 뱀들은 빚을 내서라도 그 거울을 사고 싶어하는 거예요. 화차 / 미야베 미유키 2019. 3. 5.
크눌프에 관련한 헤세의 편지 유행하는 견해와는 달리 나는 작가의 과제가 자신의 독자에게 인생과 인간에 대한 규범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거나, 그가 전능하고 권위적이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작가는 자신을 매속시키는 것을 묘사하는 자라고 생각해. 크눌프와 같은 인물들은 나에겐 매우 매혹적이네. 그들은 "유용하지는 않지만" 많은 유용한 사람들처럼 해를 끼치지는 않지. 그들을 심판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닐세.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크눌프와 같이 재능있고 생명력 충만한 사람들이 우리의 세계 안에서 지리를 찾지 못한다면 이 세계는 크눌프와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또한 내가 독자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 연약한 사람들, 쓸모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고 그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일세... 2019. 2. 28.
가난한 사랑 노래 _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_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2019. 2. 26.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 지적능력의 육성에 직접적으로 관계함으로써 지적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서툴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사람은 서툰 지력에 거의 유연성이 없는 관념과 생각을 갖게 되고, 자신의 손가락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유연성있는 관념과 생각을 가지고 사물의 본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 2019. 2. 19.
자신의 완성 진리는 분명 있네. 그러나 자네가 바라는 '가르침',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그것만 있으면 지혜로워지는 가르침이란 존재하지 않다. 자네는 완전한 가르침이 아니라 자네 자신의 완성을 바라야 하네. 신성은 개념이나 책 속에 있는 것이지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야. 싸울 각오를 하게, 요제프 크네히트. 보아하니 투쟁을 벌써 시작되었네. P107 유리알 유희 / 헤르만 헤세 2019. 2. 15.
희망 없는 삶, 환상 없는 삶 그러나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이 결국 이런 것이라면, 희망하는 것을 다 잃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기억에 남는 것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면, 그 삶은 얼마나 괴로운 삶일까. 타루가 경험한 삶이 아마 그런 삶이리라. 그래서 그는 환상 없는 삶이 얼마나 황량한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희망이 없으면 마음의 평화도 있을 수 없다. 페스트 / 알베르 카뮈 2019.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