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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서 꽤 오랫동안 생각해야 했다.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부터 이 책에 대해 무어라 말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들까지. 몇 번을 쓰고 지웠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너무나 당연하지 않게 또는 특별하게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그런 것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외면하고 있고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런 것들을, 그렇기에 더 특별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서.. 하지만 한 페이지를 넘겨쓰다 결국 포기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더 특별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어떤 설명도, 이해를 위한 설명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만큼 단순하고 간명하다. 어쩌면 우리의 주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너무나 담담하고, 때로 너무나 건조하게, 그러니까 그냥 우리 주변의 일들을 묘사하는 듯이 군더더기 없다. 인물들의 상황들과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도 금세 눈치 채게 된다. 그냥 사건의 흐름과 결과가 너무나 쉽게 예상되고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가볍고 단순해보이지만 묵직하게 다가오는 질문.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더구나 길지도 않다. 몇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그런 소설.
“내 말이 틀렸으면 틀렸다고 해, 빌. 그런데 내가 듣기로 저기 수녀원 그 양반하고 충돌이 있었다며?”잔돈을 받아 든 펄롱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시선은 걸레받이 쪽으로 떨어져 걸레받이를 따라 방구석까지 갔다.
“충돌이라고 할 건 아닌데, 네, 아침에 거기 잠깐 있었어요.”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거기 일에 관해 말할 때는 조심하는 편이 좋다는 거 알지? 적을 가까이 두라고들 하지. 사나운 개를 곁에 두면 순한 개가 물지 않는다고. 잘 알겠지만.” P. 105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P121
신부는 천천히 회중에게 등을 돌린 채 무릎 절을 하고 재단에 가서 섰다. 팔을 양옆으로 넓게 벌리고 예배를 시작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회중이 이어 화답했다. 그날 미사는 길게 느껴졌다.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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